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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 수습 기록관 .1

  • 2019.10.07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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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 #디아르노셀


수습 기록관


  

 말이 울었다.


 어떤 감정의 분출일지 모를 호쾌한 울음. 한 번 시원하게 울부짖은 말은 머쓱한지 발굽으로 바닥을 몇 번 두드리며 숨을 고른다. 그제야 나는 눈을 떴다. 낡은 짐마차가 이리도 편했던가. 마부는 귀여운 손자를 보는 시선으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감사 인사. 검붉은 로브에 달린 후드를 잘 가다듬고 난 후 내가 처음 한 행동이다. 여전히 마부는 날 손자처럼 대하고 싶은 건지, 슬쩍 날 껴안으며 건강과 안전을 기원해주었다. 그리고 마차는 멀어져 갔다. 발굽이 일정한 소리를 내며 점점 멀어져 갔다.


나우르. 남쪽에 위치한 굳은 의지의 집합체. 내가 살던 곳보다 살기 좋은 기온을 유지하지만, 그것은 인간에게만 해당하진 않았다. 인간의 손을 타길 완강히 거부하는 짐승들과 인간을 한낱 먼지처럼 보는 ‘그 부류’의 생물들. 강인한 철을 다루는 나라가 될 수밖에 없던 나우르. 그런 점에서 나는 나우르를 직접 찾아가고 싶었었다. 어떤 형태가 되었든 간에 비슷하지만 다른 이 나라에 발자국을 남기고 싶었다.

  


“어디서 오신 분인지 딱 알겠군.”

  


 낯선 사내의 목소리. 그 사내는 위아래로 경갑을 차고, 허리춤에는 검을 찬 전형적인 용병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가벼운 묵례라도 하려는 찰나에 사내는 손을 들어 말렸다.

  


“여기서는 함부로 머리를 숙이지 마. 짐승이 낚아채기 딱 좋은 사냥감이거든.”

  


 사내는 어떤 악의도 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어리둥절해 있을 무렵, 사내는 나를 가볍게 안았다. 그리고 아까의 마부처럼 건강과 안전을 기원해주었다. 어정쩡한 자세로 굳어버린 나를 보며 한 차례 호탕하게 웃으며, 뒤에 있는 자신들의 동료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사내보다 장신에 자잘한 흉터가 인상적인 남자의 이름은 ‘게보그’였다. 원래는 목공소의 일을 하던 사내였는데, 짐승들에 의해 가족을 잃고 용병으로 전직했다고 한다. 이런 과거와 달리 다소 유쾌한 사람인 건지, 자신의 소개를 하는 와중에도 ‘자식까진 낳지 않았으니 다행이지’란 웃을 수 없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물론 그런 농담에 웃는 건 한 명도 없었다.


 다른 한 명은 여성이었다. 의외로 전투에는 적합하지 않을 것 같은 체형에 두 사람과 비교하면 날렵함을 제외하면 강점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소개하는 사내는 이 파티에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 말했다. 그에 덧붙여 몇몇 칭찬을 곁들였는데. ‘에레나’란 여자는 덤덤한 표정으로 목에 건 두건을 코까지 올려 쓰기만 할 뿐, 별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저 계속해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기만 했다.

  


“아, 나는 페란. ‘에이기스’란 용병단에서 10년째 죽지 않고 활동 중인 용병이야.”

“저는 ‘아르노’. 수습 기록관으로 지금은 수행자의 신분입니다.”

“음,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새내기 용병이라고 보면 되겠지?

“아뇨, 저는 전투는 참여할 생각이 없어서….”

“다행이군. 시체를 치우는 건 이제 질려서.”



 게보그란 사람은 진심인지 농담인지 모를 말을 하고 씨익 웃었다. 


 페란은 자신들의 야영지로 안내했다. 그곳으로 향하는 동안에도 에레나는 여전히 날 죽일 듯이 바라봤다. 그런 시선을 모른 체 하기 위해 알고 있는 주문들을 속으로 수십 번 되뇄다. 야영지에 도착하자 두 명의 사내가 맞이했다. 둘 다 페란과 비슷한 키였다. 화살을 찬 붉은 머리의 사내는 곱상한 외모에 비해 다부진 체형이었고, 후드를 깊게 눌러 쓴 사내는 몸의 태가 얇은 사람이었다. 

 장작불 앞에 앉아있었던 사내는 등에 걸린 화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원거리 원호를 하는 유형의 용병이었다. 페란의 소개는 이런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에디’라고 소개된 청년은 나우르의 용병집단 간에서도 나름 알려진 ‘속사의 달인’이었다. 간단히 시범삼아 페란이 돌을 발등에 얹어 높이 날려 보냈는데. 웬만한 병사가 한참 조준 중일 시간에 벌써 돌멩이를 박살내버렸다. 착각인지 몰라도 이상하게 그때만큼은 내게 쏟아지던 살기 어린 시선이 누그러지는 걸 느꼈다.


 다른 한 명은 후드를 깊게 쓴 사내였는데. 의외로 피부가 하얗고, 결도 고운 것이 에레나보다 여성스럽게 느껴졌다. 페란은 그를 뛰어난 탐색꾼이라고만 소개했다. 그리고 다른 이들과 다르게 포옹대신 악수만을 나누었다. 잠깐이지만 악수를 나누는 동안 ‘엘’의 후드 속에서 이상한 향기가 나는 걸 느꼈다. 약간의 호기심이 생겨 페란에게 엘의 신상에 관해 다시 물었을 땐, 그저 반복하듯 뛰어난 탐색꾼이란 말 밖에 들을 수 없었다.


 그렇게 모두와 통성명을 나눈 뒤, 페란에게서 임무의 내용에 대하여 들을 수 있었다. 나우르는 원래 많은 짐승과 ‘그 외의 것들’이 출몰하는 지역이었기에 퇴치의뢰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페란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그런 종류의 의뢰이겠거니 했다. 작은 목장의 양떼를 도륙하고, 기껏 일궈놓은 밭에 무자비한 발굽을 내리찍는 해로운 야생동물 퇴치. 처음에 스승의 말을 듣고 이곳으로 왔을 때부터 그 광경을 쉽사리 상상할 수 있었다. 남은 기간 동안 책으로만 보던 나우르를 둘러보면서, 위브릴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을 눈 속에 담아가야지. 이런 소박한 여행계획까지 짜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용병으로만 두 자릿수의 해를 넘긴 페란의 표정은 심각했다. 그리고 그의 말을 경청하는 다른 동료들의 표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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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상 위브릴의 만행에 대항하기 위한 연합군이 결성되기 이전의 내용입니다

짧은 중편 분량 정도로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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