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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꽃, 아달리아

  • 2019.10.29 02:17
  • 조회수102

#디아르노셀 #수습기록관


  



햇빛이 너무 밝아, 울창한 숲의 나뭇잎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따사로운 날이었다. 그런 날이면 너는, 멀지 않은 작은 동산 위에 피어난 이름 모를 꽃을 주우러 가곤 했다. 그 하얗고 얄팍한 꽃잎을 가슴에 한 아름 품고서,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과 ‘그 아이’에게 몇 개씩 쥐여주곤 했다. 



너는 둥글게 톡 튀어나온 이마를 어루만지길 좋아했다. 늘 부끄러움을 가득 안고 사는 어린아이의 버릇이라 할 수 있지만. 그 모습을 보는 너의 아버지와 어머니, 동네 ‘가움’의 사람들에겐 한없이 사랑스러운 애교였다. ‘그 아이’도 똑같이 생각해주었으면. 너라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오후에는 꼭 돌아와야 한단다.”

  



너는 대답 대신 웃음을 터뜨리며 집을 나섰다. 평소에 입지도 않던 주름 많은 푸른 원피스를 입고서 동산에 올랐다. 오늘도 이름 모를 꽃은 따스한 햇볕을 품고자 활짝 입을 벌렸다. 하나, 둘. 숫자를 세어가며 꽃의 왕관을 만든다. 미리 챙겨둔 줄기에 재주껏 꽃을 엮고 엮는다. 가움의 거리를 쏘다니던 일, 저녁이 너무 늦었다는 핑계로 그 아이의 집에서 저녁 식사를 같이했던 일, 울창한 숲의 초입을 모험했던 일. 물론 그날은 크게 혼이 났다. 작고 불그스름한 두 볼보다 더 빨갛게 부어오를 만큼 종아리를 맞았었다. 하지만 그날은 너보다 어머니가, 아버지가 눈물을 많이 흘렸더랬다.

  



“열 둘. 됐다.”


  


잠깐 마음이 무거웠지만, 이 작은 왕관은 행복해야만 하니까. 너는 웃는다. 가움의 모든 이가 사랑스럽게 여기는 미소를 피우자, 꽃이 시샘이라도 난 것처럼 후드득. 떨어졌다. 너의 곱슬거리는 붉은 머리칼이 바람에 날린다. 어째서 갑자기 날이 스산해지는 걸까. ‘그 아이’가 오래 기다리는 게 아닐까.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너는 그 걸음이 가움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하게 될 것이란 걸. 너는 알지 못했다.



마을 어귀는 소란스러웠다. 평소 같으면 몇 마디 말을 붙이던 문지기 ‘알렘’ 아저씨의 무장은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아까의 바람보다 큰바람이 불기 전에 대비하는 건지, 갑갑한 갑옷을 입고 있었다. 알렘 아저씨는 너를 보자마자 황급히 달려왔다. 뒤뚱거리는 폼이 꽤 웃겼지만 너는 웃지 못했다.

  



“얘, 뭐 하고 있어? 얼른 집으로 돌아가라.”

  



너는 몹쓸 짓이라도 한 아이처럼 화관을 뒤에 숨기고 주춤주춤 알렘 아저씨의 옆을 지나갔다. 아저씨는 곧 마을의 장정들과 ‘칼’을 옮기기 시작했다. 마을의 거리는 스산한 기운을 풍기던 동산보다 조용했다. 가움의 자랑이던 돌집의 풍경이 너무나도 싸늘해 보였다. 울퉁불퉁하지만 다들 제 짝이 맞추어 하나의 집으로 완성되는 돌집. 나우르 사람도, 위브릴 사람도, 어느 파문당한 수도승도 모이는 ‘가움’의 포근함과 같은 모습이었지만.



  

오늘은 왠지 울창한 숲에서 보았던 돌무덤이 생각난다.

  



상점이 위치한 거리에 다다르자, ‘그 아이’가 보인다. ‘알렘’ 아저씨의 아들이자, 너의 바람대로 다른 이의 남편이 될 ‘데미안’이 초조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곧 너를 본 ‘데미안’은 ‘알렘’ 아저씨처럼 허둥지둥 달려온다. 그 닮은꼴이 우스워 그만 웃음을 터뜨렸지만, 데미안은 웃지 못했다.

  



“괜찮아? 동산에 나갔다길래, 찾으러 가려 했는데. 어른들이 잡아둬서 못 갔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어른스러운 투로 포옹을 하는 데미안. 그 때문에 너는 화관을 놓칠 뻔했다. 요동치는 가슴이 곧 오게 될 무언가의 ‘전조’일지, 지금 앞에 있는 ‘데미안’때문인 건지 헷갈렸다. 데미안은 자신의 품에서 작은 단도를 꺼내 쥐여준다.

  



“이거 가지고 있어. 혹시 모르니까.”

  



데미안, 우리가 보았던 돌무덤이 생각나지 않니? 너는 이 가볍고 서슴없는 물음을 꺼내려다 머금었다. 꽃봉오리처럼 오므린 입술로 그 말을 꿀꺽 삼킨다. 어째서일까. 그런 궁금증은 충족되지 못했다. 너의 옆으로 기다란 창이 꽂혔으니까.



데미안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품에 안았다. 덕분에 몸은 무사했지만, 소중한 화관이 한 송이의 꽃이 되어, 지나간 나날처럼 낙화(洛花)했다. 그 아이는 사랑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하고 도망치는 귀족의 자재처럼 너를 붙잡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귀에는 데미안의 둔탁한 발소리와 한 박자 어그러진 너의 발소리, 그리고 사람들의 비명이 섞여 들렸다.

  



“내가 숨을 장소를 알고 있어. 그러니까 조금만 더 달리자.”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조근조근 말을 뱉어낸다. 이 달리기는 영원히 계속될 거 같았다. 아니, 그냥 이대로 동화 속의 주인공처럼 사라진다면 어떨까. 아마도 너는, 사람들의 비명들에 놀라 이걸 한낱 꿈으로 여기지 않았던 걸까. 그렇기에 이 꿈은 언젠가 깨어날 것이라고, 그래서 이 달리기가 영원하길 바랐던 건 아닐까.

  


데미안이 품에 달고 있던 검을 땅에 떨어뜨렸고, 두 사람의 손은 떨어졌다.


  


이상했다. 오늘은 비가 오지 않을 만큼 따사로운 날이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영원할 것만 같은 태양이 하얗게 가움을 내리쬐고 있었는데. 지금의 하늘은 너무나도 붉고 어둡다. 너는 그만 눈을 감았다. 데미안의 비명을 들으면서였을까? 아니면 붉은 하늘에서 소나기같이 내려오는 ‘무언가’에 몸이 꿰뚫린 직후였을까.

  


갑자기 '그 날'이 떠오른다. 너무나도 많은 매를 맞았던 그 날이. 데미안과 울창한 숲을 모험하며, 훗날에도 두 사람을 닮은 아이를 데리고 나오자고 생각했던, 그런 두 사람의 앞에 보였던 무수한 돌무덤을 보았던 '그 날'을.


너는 눈을 떴다. 데미안이 왜 울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아마 화관을 보아서 였을까. 그 아이는 그럴 만 하다고, 너의 작은 생채기에도 울상을 짓던 데미안이라면, 너의 수고를 알고 울어주지 않았을까. 너는 웃으며 데미안의 뺨을 어루만진다. 괜찮다고, 그 꽃은 늘 피어있으니까. 나만 볼 수 있는 꽃, 다시 엮으면 지나간 날의 회상처럼 줄줄이 엮일 꽃. 



  

그런데 말이 나오질 않아, 말을 할 수가 없다.


  


잠깐의 풍파가 지나면, 가움은 이제 사라진다. 이미 사라졌었다. 돌밖에 남아있지 않아, 이제는 마을이 아닌 ‘터’로 불리게 되어버렸다. 그래도 그 옆의 동산에 그 이름 모를 꽃은 피어있다. 이곳을 떠나기 전, 데미안이 이 꽃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너를 닮아 아름답게 피어나던 꽃, 아달리아. 그 해맑던 너의 미소와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 활짝 벌리던 두 손을 닮은, 나의 꽃 아달리아. 나를 닮은 꽃 아달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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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은 좋은 사람을 만나, 아이를 낳았을 거다. 왜냐면 아달리아는,  데미안이 행복해지기 위해 피어나는 꽃이기 때문이니까. 

  


늘 기다릴게. 나의 데미안.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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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기록관을 연작하기엔 시간이 충분치 않아 단편으로 대체합니다.

이 작품은 외전이자, 작중 등장한 나우르의 '가움의 터'에 대한 이야기 일부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점에 유의하면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갑사합니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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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 2019.10.29 02:26
    글이서정적이면서 부드러운 느낌이들어요.잘읽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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