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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어느 노란 나비의 일기
- 2019.10.2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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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르 센트로. 한때 한 저택의 집사였으나, 제인의 결속으로 인해 노란 나비 한 마리가 되어 그의 시중을 들고 있다. 최근엔 그의 비밀 역시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던 터라, 몇 안되는 이들처럼 입이 단속된 자들 중 하나가 되었다. 그는 비록 평범했으나, 많은 이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75세의 늙은이였다.]
-영혼 정리본 中(흑장미)-
"주인님, 오늘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집 안에 들어와도 벗지 않던 베일이 없어져있자, 작은 나비는 창고에서 새 베일을 가져다 주었다. 덜덜 떨리는 손을 감추지 못한 채 제 날개 위에 있는 베일을 집어든 제인은 몹시 불안해보였다. 평소다운 여유로움따위는 안중에도 없어보였다. 더 알고 싶어 입을 열려 한 그때, 흑장미의 눈치를 받았다. 결국 베인은 쓰러질 듯한 몸을 겨우 가눈 채로 소파에 몸을 맡겼다. 평소같았으면 금했을테지만... 집사일만 50년, 스스로의 행동은 스스로가 해야 하는 것을 안 늙은 나비는 조심스레 제 모습을 드러내었다.
"주인님, 여기 물입니다."
하얀 장갑에 잡힌 물컵이 겨우 보이자, 제인은 마른 입을 떼어 물을 목구멍 너머로 떠넘겼다. 겨우겨우 정신이 들었는지, 베일 틈으로 드러낸 검은 장미가 얼굴을 가득 채웠다. 슬슬 날이 다가옴을 눈치챈 흑장미는 갈증이 심각한 상태였다. 제인이 기절할 정도로 갈증을 느끼는 현상 역시 극초반일 뿐이었다. 비록 갈증이 느껴진다 해도, 정확한 날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심지어 흑장미 본인 마저 알지 못했다. 당분간 외출은 불가능해 보이자, 늙은 나비는 착잡함이 느껴졌다. 시중을 드는 고통보다, 온 몸에 구멍이 뚫려 장미의 고통을 느껴야 하는 제인을 보기가 힘들었다. 아무런 말도, 움직임도 못한 채로 일년에 몇 번씩 고통과 싸우는 그를 도와주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다시 작게 돌아온 늙은 나비는 그의 머리맡에 조용히 앉아 날개를 접고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그가 잠시나마 고통을 덜어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