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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 아로노셀 기록서 제3장 7설, 뒷이야기 - 또 다른 어둠

  • 2019.10.23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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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 #아르노셀 #Mobile


아르노셀 기록서 제3장 7설
 갑자기 몰려온 혼돈의 군단에 마을이 무너져 내렸다. 그때 갑자기 나타난 검은 망토의 여인이 그들을 모두 죽여 대다수의 마을 사람들이 살아남았지만, 곧이어 검은 망토의 여인은 마을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명의 사람이 남지 않았을 때 외치기를, '어둠의 세력과 빛의 세력이 부딪혀 세계를 흔들리게 하니, 그 끝은 회색빛 잔재로 남으리라. 제국이여, 만수무강하소서!'라 하였다고 한다. 그러고 검은 망토의 여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한다. 목격자에 의하면 그녀는 하얀 머리카락 색과 붉은 눈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사건에 대하여 브리크리덴의 황제는 브리크리덴과는 연관이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하였다.


 "여! 왔어?"
 [촐리스]는 먹던 생선 꼬치를 흔들며 말했다. 검은 망토를 입고 있는 그는 붕대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나마 보이는 얼굴도 붕대로 칭칭 감겨 있어서 말을 하지 않고는 그, 본인이라고 알아보기 힘든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근데, 그 정도까지 해야 했어? 아, 이열치열이니 상관없으려나?"
 [촐리스]는 생선을 다시 크게 한입 베어 물고는 기쁜 듯이 웃었다. 그에 [사디르]는 "거기에는 '브레스엔 브레스, 메테오엔 메테오'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지. 지능까지 같이 사라진 거야?"라며 [촐리스] 옆에 앉았다.
 "근데, 근데, 마지막에 그건 뭐야? 제국이여, 만수무강하소서! 이랬잖아."
 [촐리스]는 [사디르]의 딴지에는 신경 쓰지 않고, 그녀를 따라 하며 미소지었다. 그 미소는 연관성을 묻는 의미가 분명했다. 하지만 질문한 [촐리스] 본인도 전혀 연관성이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냥 취미야. 그냥 장난 같은 거."
 [사디르]는 모자를 뒤로 넘겨 머리를 가볍게 털어냈다. 그러자 그녀의 하얀 머리카락은 바람에 날려 춤을 추기 시작했다.
 [사디르]가 방금 행한 일은 경고였다. 하지만 일정 수 이상의 죽음은 누가 보더라도 학살에 불과했다. 이 자리에 있는 둘은, 그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죄책감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근데, 다음은 어디로 갈 거야? 아아, 굳건한 방패가 좋으려나? 재밌겠다. 재밌겠다!"
 [촐리스]는 양손에 하나씩 생선 꼬치를 잡고 흔들며 어린아이처럼 웃어댔다. 생각보다 시끄러운 웃음소리였지만, 이곳에는 문제 삼을 생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한동안 웃어대던 [촐리스]는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는 생선 꼬치로 눈가에 있는 붕대를 살짝 들어 올려 [사디르]를 쳐다봤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그 혼돈인가 어둠인가, 그 군단까지 죽인 이유는?"
 [촐리스]에게는 전과 달리 무거운 분위기만이 맴돌았다. 방금까지 어린애같이 생선을 뜯어 먹던 남자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그런 그에게 [사디르]는 자신의 앞머리를 살짝 들어 올리며 미소지어 보였다.
 "우리는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는 환상 속 존재들이잖아? 우린 누구의 편도 아니야. 생긴 거로 그러면 할 말이 없지만 말이야."
 [사디르]는 가녀린 손가락에 묻은 핏방울을 털어내며 작게 "찝찝해."라고 속삭였다.

 그녀의 말대로 이 자리에 있는 둘은 누가 보더라도 인간처럼 생겼다. 그저 붕대를 두른 남자와 하얀 머리의 여자. 그게 둘의 외견이었다. 하지만 둘은 인간이 아니었다.

 "하나 먹을래?"
 "아니야, 괜찮아. 비슷한 피부다 보니, 좀 그렇거든. 먼 친척 먹는 기분이라 해야 하나. 그래서 좀 그래."
 [사디르]는 좀 오한이 드는지 망토를 여몄다. 그런 다음 조용히 "비늘은 벗겼는데."라고 중얼거리는 그를 무시하고는 왼손을 모닥불 쪽으로 뻗었다.
 "이거 꺼트릴 수는 있는 거야?"
 [사디르]는 왼손을 다시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고는 의문을 표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촐리스]는 걱정 말라는 듯이 웃어 보였다.
 "걱정 마, 걱정 마. 힘을 봉인 당했다고 해도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나는 격이 다른 환상의 생물이라고. 하하!"
 [촐리스]는 오른손을 뻗어 불을 순식간에 꺼트렸다. 그러고는 [촐리스]는 순식간에 시무룩해져서는 "아, 심히 약해졌네."라고 중얼거렸다.

 [촐리스]의 오른팔에는 수많은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엄연히 따지자면 그건 봉인진이기도 했고, 술식들의 집합체이기도 했다. 그 진들은 붕대들에 감싸져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일부로도 수많은 진이 그려져 있다는 건 예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진들은 그가 위험한 존재였다는 걸 알려주는 증표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세상도 참 많이 변했어. 그렇게 숭배할 때는 언제고, 봉인을 하려 들고 말이야. 이젠 다른 이종으로 구별해 적으로 인식하다니, 재밌어."
 "뭐, 그래도 시리앙미르쪽에서는 아직도 널 숭배하는 종교들이 있긴 하잖아?"
 "그들은 날 숭배하는 게 아니야. 아무도 죽이지 못하던 그 새 한 마리를 숭배하는 거야. 하지만 그 새는 이미 이 세상에 없어."
 [촐리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손끝을 튕겨 작은 불꽃을 일게 했다. 그 불꽃은 공중에 흩날리더니, 태울 걸 찾지 못해 끝내 사라지고 말았다.
 "신과 괴물은 한 끗 차이지. 나는 그때, 그 한 끗 차이로 괴물이 된 거야. 나는 그때 신의 호칭을 내려뒀어. 그럼 가볼까? 철 덩이가 얼마만큼 불을 버틸지 궁금해졌어. 아아, 너도 다를 거 없다고. 알아둬, 역린을 빼앗긴 가냘픈 물고기."
 [촐리스]는 다 먹은 생선 가시를 땅에 던지고는 일어섰다. 그러고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사디르]는 그 뒤를 따라가며 망토의 모자를 다시 머리에 써서 붉은 눈을 감췄다. 그 둘이 떠난 자리에는 회색빛 재 덩이들과 부서진 생선 가시들만이 존재했다.
 그렇게 서서히 회색빛 어둠은 세상을 덮으려고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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