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일상] 옆세계 대현자의 책
- 2019.10.12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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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루스의 책이 아름다워 나도 책 한권을 소개할까 싶어 소개한다네
예전에 집으로 가던 길에 책 하나를 주운 적이 있다. 문자를 보니 이 세상의 문자는 아닌 듯하였으나, 이상하게 뜻이 읽히는듯하여 집으로 가져가 읽었는데, 그 내용이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자연에 대한 심오하고 신박한 이해가 아름다운 비유들로 표현된 책으로..신기하면서도 즐거운 내용들이 가득 찬 책이었다. 그 내용은 감히 말하건데, 아르노셀에서 내로라하는 현자들의 지혜들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나는 이 사랑스러운 책의 이야기들 중 하나를 가져와 보았다.
현자가 죽게 되었을 때, 제자들이 장례를 후하게 치르고자 했다. 이에 현자가 말했다. "내게는 하늘과 땅이 무덤의 관이고, 해와 달이 장례에 쓰일 한 쌍의 옥이며, 별과 별자리가 장례에 쓰일 둥근 구슬이 이지러진 구슬이고, 온갖 것들이 다 장례 선물이다. 이처럼 내 장례를 위해 모든 것이 갖추어져 모자라는 것이 없는데 무엇을 더 한다는 말인가?"
이 말이 현자가 자신이 죽으면 자신을 땅에 버려두라고 말하는 것임을 알고 제자들이 까마귀나 솔개가 현자의 시신을 먹을까 두려워 감히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한다.
현자가 답하길 "땅에 있으면 까마귀나 솔개의 밥이 되고, 땅 속에 있으면 땅강아지와 개미의 밥이 되거늘 어찌 한쪽 것을 빼앗아 딴 쪽에다 주어 한쪽 편만 들려 하는가?
이 재미있는 현자의 말을 읽으며 나름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과연 캐임드웨이브에서 조화와 탄생과 죽음을 주장한 수많은 현자들 가운데 이렇게 자신의 죽음마저도 유쾌하게 풀어낸 자가 있었을까...죽기 직전까지 아니, 죽은 후에서까지 이렇게 자연을 벗으로 삼았던 자가 있었던가. 우리는 탄생을 숭고한 벗으로 삼듯이, 과연 죽음을 이 현자와 같이 유쾌한 벗으로 삼을 순 없는가?
책을 주운 이날, 나는 까마귀와 솔개와 개미와 땅강아지를 불러 책의 이 내용에 관해 잡담을 나누어 보았다. 그들이 찾아낸 이 유쾌한 현자의 한 가지 허점은 이것이었다.
“그쪽 세계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시체가 땅 위에 있으면 까마귀도 먹고 솔개도 먹고, 땅강아지도 먹고, 개미도 먹을 수 있으니 다 같이 즐겁게 먹을 수 있기는 합니다.”
나는 이 말에 호탕하게 웃으며 무릎을 아니 칠 수 없었다. 이에 농담으로
“즐거운 이야기 고맙네! 나중에 내가 죽으면 내 시체를 선물로 주도록 하겠네!”라고 하자 그들이 답하길,
“그전에 우리가 늙어 죽습니다.”하였다. 흠..여러분에게는 모르겠으나, 아마 그들에게는 내가 영원히 사는 것이 꽤 섭섭한 일이었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