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공모전] 용사야, 너를 원한다. (1)

  • 2019.10.12 06:40
  • 조회수106

#공모전


 "할머니! 그래서요, 그래서 공주님은 어떻게 됐어요?"


 "바보야, 백성들을 먼저 생각해야지. 아름다운 공주님은 구해줄 사람이 많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잖아."


 "바보? 뒤질래?"


 "자, 자, 그만하고 이야기 마저 들어야지?"


 새하얀 백발 사이사이로 회색 머리가 숨어있는 노파가 아이들을 부드럽게 타일렀다. 내가 너의 강아지같은 인성을 반으로 갈라버리겠다, 해 보렴 이 부족한 아이야, 같은 말들의 사이로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가 들려왔다.


 ******


 "에비게일, 설마 우리가 이길 수 있을거라 믿는거야? 그까짓 공주, 그냥 제물로 바쳐! 심지어 그 나쁜 기지배는 너에게 독을 먹이려고 들었던거 기억 안 나?!"


 "쉿, 누가 듣겠어."


 왕성의 벽에는 귀가 달렸고 창문에는 눈이 달렸다. 어릴때부터 귀가 썩어 문들어질 때까지 들으리라 여긴 말이다. 흥분해 그 당연한 상식도 잠시 잊은 제니퍼가 손수건에 물을 묻혀 얼굴의 열을 식혔다.


 이마에 올려져 눈을 아슬하게 가린 손수건의 레이스 사이로 프리지아 꽃을 닮은 금발이 비쳤다. 자신이 기억하는 가장 과거부터 봐왔던 색. 마차 사고로 부모를 잃은 자매는 서로만을 의지하며 자랐다. 정확히는, 제니퍼가 일방적으로 에비게일에게 의지했었댜.


에비게일의 흐릿한 연녹색 눈과 제니퍼의 갈색 눈이 서로를 오랫동안 담았다.결국 먼저 눈을 피한 건 제니퍼였다. 시선을 흙먼지가 묻은 구두로 옮긴 제니퍼가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죽으면 가만 안 둬. 공주고 왕이고 왕국이고 다 태워버릴거야."


 마법에 상당한 자질을 보인다는 평을 받는 열 넷 소녀의 거창한 한 마디였다.


******


 준비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열 여덟살의, 성년식도 치른지 얼마 안 된 아일 또래의 딸을 위해 사지로 내모는 일을 계획하는 것은 왕을 죄책감에 시달리게 하였으니. 눈 앞에 보이니 더 죄책감이 든다. 답은 간단했다. 눈 앞에서 치우자.


 이기적인 왕의 알량한 죄책감 덕분에 용에게 잡힌 공주님을 구하러 가는 소녀의 짐은 휘황찬란했다. 각종 금은보화에 이름난 대장장이들이 돈과 금을 쏟아부어 만든 명검. 보호 마법이 부여되어 용의 브레스도 한 번은 막을 수 있다는 로브. 


 왕비는 소녀의 손을 붙잡고 울었다. 부디 내 딸을 구해주세요, 우리의 아름다운 공주님을 돌려주세요. 그 모든 말 앞에서 소녀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지팡이를 짚어 마차에 올라탄 에비게일은 창문 밖, 어디선가 그녀를 보고있을 제니퍼를 떠올렸다.


 '용에게 희생당한 사람은 공주뿐만이 아니야.'


 삼 년 전의 겨울, 매서운 눈보라를 뚫고 한 마을을 괴멸시킨 용의 소식은 봄이 되어서야 상인들에 의해 이곳 저곳으로 퍼졌다. 겨울에는 마을간의 소통이 거의 완벽하게 단절되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3년동안 약 7만명의 사람들이 용의 장난질에 목숨을 잃었다. 사실 그 '용' 이란것의 정체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거대한 파충류같은 생김새가 용과 비슷하기에 용이라 불렸을 뿐. 대륙 곳곳을 순식간에 헤집으며 사람과 동물을 학살하고 다닌 그것은 그저 재앙일 뿐이었다.


 '지금은 공주를 제물로 내놓으면 다시는 이 대륙을 밟지 않겠다고 하였지만 그 약속을 믿을 수는 없어. 그리고......'


 에비게일은 망설였다. 하지만 그래, 이 것은 그저 생각일 뿐이다.


 '공주는 죄가 없어. 있더라도 그 죄는 인간들에게 심판받아야 하는 죄이지, 용에게 받을 게 아니야.'


 포장되지 않은 돌과 자갈이 가득한 도로로 나왔는지 마차가 심하게 덜컹거렸다. 그 충격으로 쥐고있던 지퍙이를 놓친 에비게일이 마차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움직여 더듬으며 지팡이를 찾았다. 


 남들은 쉽게 보고 들어올릴 지팡이조차 어렵게 어렵게 만져서 주어야하는 에비게일이다. 눈이 안 보이는 것도 그저 신이 나를 시험하시는 것일 뿐이라 생각하는 에비게일이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져 값비싼 원단의 드레스에 자국을 남겼다.

댓글 0

댓글을 입력하려면 로그인 해주세요.

자유 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