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공모전]Chapter 3. 동행
- 2019.10.12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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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생명체는 아니나 그 느낌은 비슷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가까운 곳까지...”
“이미 나우르 북쪽 부근에서는 여러 번 출몰했으니 무리도 아니지요.”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이오?”
오트가 깨어났을 때는 어둑한 밤이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낮의 일이 꿈이었나 생각하던 찰나, 오랜만에 듣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브리크리덴의 동쪽을 관할하는 장군, 그의 고모부 호크였다. 그리고 한 사람은 고모, 나머지 한 사람은...
“이미 세다크 님께서 예언하신 뒤로 시리앙마르에서는 위브릴을 상대로 한 나머지 네 국가의 연합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다만...”
청년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그게 쉽지가 않네요.”
잠시 동안의 침묵 뒤 말문을 연 것은 호크였다.
“케임드웨이브요?”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우르에서도 여러 번 보고되었지만 그 생물체들에게는 일반적인 무기가 듣지 않는 것 같더군요. 아시다시피 케임드웨이브는 엘프, 마법사, 정령술사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따라서 이번 전쟁에는 그들의 도움이 필수적이죠. 이번 연합 결성에 대해서 오래전 과거에 마족들과 악연이 있었던 엘프들은 호의적이지만 나머지 두 종족이 그렇지가 않네요.”
“대체 이유가 무엇이오?”
청년은 다시 조금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아시다시피 그들은 물의 여신 루스를 숭배합니다. 물은 편파적이지 않죠. 그들에게 주어진 상황대로 흐르고 멈추기도 합니다. 그 상황이란 삶일 수도, 죽음 일수도, 평화 일수도, 위험 일수도 있습니다.”
“그럼 지금 상황을 그냥 받아들이기만 한다는 말이오?”
그는 대답 대신 말을 이어갔다.
“그들은 삶과 죽음을 공평하게 존중합니다. 그들에게 살아있음은 소중한 것이고, 죽음조차 의미 있는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법칙을 그들에게만 적용하지 않습니다. 그 대상이 인간이든, 마법사이든, 성직자이든, 그리고...”
“맙소사.”
“그 대상이 마족일지라도 말이죠.”
“그들답군. 그래서 대책이 있소?”
“네, 날이 밝는 대로 곧장 케임드웨이브로 떠날 예정입니다. 교황께서도 오늘 이 곳의 사고를 보고 받으시고는 되도록 빠른 해결을 원하시더군요.”
“그들이 마음을 바꾸겠소?”
“시도는 해봐야겠죠. 그들의 원칙상 세 종족의 원로 중 두 명이 찬성하면 연합이 결성되기야 하겠지만 저희는 최대한 그들을 모두 설득시키는 쪽으로 진행하려 합니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그들 모두의 역할이 중요하거든요.”
“천사님.”
2층에서부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려온 오트가 불안한 눈빛을 하고선 입을 열었다.
“렌은, 렌은 어떻게 되었죠?”
신관은 알 수없는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입을 뗐다.
“용감하더구나, 내가 사람을 잘못 봤어.”
“렌은 어떻게 되었냐고요.”
“오트, 널 구해준 분에게 무례하게 뭐하는 짓이니.”
“아니, 괜찮습니다. 오트, 너도 태양의 여신의 가호를 받는 어엿한 남자니까 들을 권리가 있는 것 같구나. 렌은 죽었다.”
청년의 말이 칼날같이 오트의 가슴을 후벼팠다. 더 이상 예의 듣기 좋은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내가 손썼을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어. 미안하구나.”
“...그 괴물은 뭐죠?”
신관은 눈을 감고 관자놀이를 지긋이 누르며 대답했다.
“위브릴의 왕이 마계의 문을 열었다. 그 괴물도 마족 중 한 종류지. 그는 마족을 이용해서 아르노셀을 통합하고 주인이 되려는 모양이야.”
“저도... 저도 케임드웨이브로 데려가주세요. 그들을 설득하는데 도움이...”
“오트, 그 곳은 브리크리덴 같은 곳이 아니다. 아무도 널 반겨주지 않고 네 목소리를 낼 상황도 없을 거다.”
호크가 오트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짐꾼이라도 하겠습니다. 제발 데려가주십시오.”
신관은 소년의 타오르는 듯이 빛나는 에메랄드 색의 눈동자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어제도 저런 색이었던가.
“어떻게, 데려가도 될까요?”
고모부 내외는 흠칫 놀랐다. 그들은 신관이 당연히 소년의 무모한 부탁을 거절할 줄 알았다.
“진심이십니까?”
“네, 사실 아직 지금 나타난 마족을 실제로 본 사람이 몇 없거든요. 어제 그 종도 이제껏 보고된 적 없고요.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도움이 된다면야 저희는 괜찮습니다만...”
호크가 저희라고 대답했지만 한 쪽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청년이 노파의 떨리는 손을 따뜻하게 잡으며 말을 건넸다.
“미트 부인, 걱정하지 마세요. 항상 제 옆에 둘 테니까요.”
대화를 마치고 신관은 잠시 밖으로 바람을 쐬러 나왔다. 반딧불이의 짝짓기 철인지 여기저기서 자신의 꽁무니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 그는 규칙 없이 떠도는 빛의 무리를 감상하며 생각에 잠겼다. 자신은 정말 그 소년이 도움이 될 것 같아 동행을 허락한 걸까. 생각은 신관의 짧은 기도와 함께 끝이 났다.
“여신님, 용서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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