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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 마계인 따라잡기

  • 2019.10.07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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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방지구나! 내가 누구인 줄 알고!”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너희쯤은 흔적도 없이 날려버릴 수 있다!”


 붉은 피부의 병사가 고래고래 소리치는 세 사람을 끌어다 바닥에 내던졌다. 그들은 갑옷을 입었으나 수풀 사이를 밧줄로 묶여 끌려온 탓에 풀과 먼지로 엉망이었다.


 “무슨 일인데?”


 커다란 군용 천막 안에서 적갈색 머리의 젊은 여성이 하품을 하며 걸어 나왔다. 머리칼을 빗어 내리며 느릿느릿 움직이는 폼이 방금까지 자다 일어난 모양이었다. 사람들을 끌고 왔던 병사가 그에게 다가가 낮게 속삭였다.


 “헤에, 사칭범?”


 정찰병은 근처 마을에서 마계 세력을 자처하며 행인들에게 돈을 뜯어내는 세 사람을 발견하고 곧바로 제압했다. 별 볼일 없는 실력으로 마계인을 사칭했다는 이야기에 여성은 즐거워하며 팔짱을 꼈다. 쓰러졌던 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으나 다른 병사가 다가와 말없이 무릎 뒤쪽을 걷어차 넘어뜨렸다. 고통 때문인지 불만의 목소리는 더 높아졌다.


 “이놈들! 나는 위대한 마계의 아르노셀 침공군 제2군단장 케인이다. 진정 내가 군단을 소환해 전부 쓸어버리길 바라는 것이냐!”

 “참으십시오, 군단장님. 사령관님의 지시 없이는 힘을 개방하시면 안 됩니다.”

 “크윽, 내가 힘을 봉인하고 있지만 않았어도…….”

 “라케이온 부관의 말이 맞소. 이 자리는 내게 맡겨주시게.”


 삼십 대 정도 되는 통통한 남자가 케인을 진정시켰다. 전쟁과는 거리가 먼 유순한 인상의 그는 자세를 고쳐 앉고 여성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했다. 흰 피부와 뾰족한 귀가 유난히 남자의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여기는 엘프들의 터전인 모양이군. 나는 즈벤던이라 하오. 마계에서 온 혼돈의 군세를 이끄는 제3군단장이며…….”

 “푸하하핫, 넌 내가 엘프로 보여? 게다가 너도 군단장이면 마계 군단장님들이 단체로 잡혔네?”


 여성이 웃음을 터뜨리자 주변에서 경계를 서거나 이야기를 나누던 병사들도 킥킥거리며 밧줄이 묶인 이들을 곁눈질했다. 즈벤던은 병영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이마를 찌푸렸다.


 “예의를 갖추지 못한 분들인가. 아인종의 무리는…….”

 “어이, 치벨! 이쪽으로 좀 와봐라.”


 여성의 외침 때문에 즈벤던의 비난은 무시되었다. 잠시 후 땅을 쿵쿵 울리며 나타난 치벨은 어깨 높이만 해도 7m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고릴라였다.


 “부르셨습니까, 알라티 님.”

 “여기 이놈이 자기가 마계 3군단장이라는데, 너 혹시 군단장 자리 그만뒀냐?”

 “그럴 리가요. ‘새벽의 드높은 분’께서 내려주신 지위는 제가 멋대로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치벨이 머리를 숙여 즈벤던을 자세히 살폈다. 흙바닥에 앉은 세 사람은 처음 보는 종족, 처음 보는 광경에 압도되어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입만 뻐끔거렸다. 사람 머리만한 치벨의 눈알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모습은 개구리를 삼키기 직전의 뱀을 연상시켰다.


 “처음 보는 인간이군요.”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너 가질래?”

 “기꺼이.”


 알라티의 허락이 떨어지자 치벨은 즈벤던을 손가락으로 휙 들어올렸다. 당황한 즈벤던이 당장 내려놓으라며 비명 질렀지만 치벨이 입에 넣고 오독오독 소리 나게 씹자 곧 조용해졌다.


 “갑옷까지 먹다니 식성 참 좋네.”

 “편식하지 말라고 배웠습니다.”


 상황을 지켜본 라케이온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는 앉은 채로 땅을 긁어대며 도망치려 했지만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먼지만 일으키는 꼴이 되었다. 알라티가 손짓하자 병사 둘이 라케이온을 양쪽에서 붙들어 일으켰다. 이렇게 보니 체구만 크다 뿐이지 상당히 앳된 얼굴이었다.


 “우리 부관이 볼일이 있어서 지금 자리에 없거든. 그러니 너는 걔가 돌아오면 넘겨주겠다. 아마 해부용으로 쓸모가 있을 테지. 끌고 가서 가둬놔.”

 “아, 안 돼. 살려줘! 살려주세요! 아아악!”


 라케이온이 끌려가고, 알라티의 앞에는 케인만이 남았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기세등등하던 모습은 간데없고 넋 나간 꼴을 한 케인을 보니 알라티는 불쑥 화가 치밀었다. 그는 케인의 배를 걷어찼다.


 “어이, 제2군단장 씨. 날 똑바로 봐.”

 “크, 콜록, 흐으…….”

 “마계 추종자 놈들이야 흔하니까 그러려니 하겠어. 그렇지만 내 지위 팔아서 엉뚱한 놈이 도적질하고 다니면 내 이미지는 뭐가 돼? 응? 그러면 돼요, 안 돼요?”


 알라티가 케인을 어린애 다루듯 빈정거림과 동시에 케인 주변의 땅이 검게 물들더니 천천히 아래로 가라앉았다. 평범한 땅이었던 곳이 끈적끈적한 늪으로 변하자 케인은 벗어나려 몸부림쳤지만 팔이 묶인 상태라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조차 무리였다.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마계로 보내주지. 과연 몇 초나 살아남는지 보자고. 30초라도 살아남으면 자랑스러워해도 돼.”

 “난 그저 흉내를…… 재미, 아니 농담이었어! 놀이라고!”

 “그래그래. 나도 알아. 근데 놀이랑 범죄는 구분해야지, 사칭범 씨?”


 케인은 뭐라 더 변명하려 했지만 늪이 목까지 차오르자 고개를 내두르며 마구 울부짖었다. 이윽고 케인의 머리끝까지 잠겨 보이지 않게 되자 검은 늪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원래의 흙바닥으로 돌아갔다.


 “재밌게 즐기라고.”


 알라티는 눈을 가늘게 뜨고 미소 지었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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