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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 당신에게 영원을 바치며
- 2019.10.05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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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rzfHX8kd0Iw
밑에 글읽은뒤에 듣는 노래입니다, 가사랑 함께 곱씹어보세용^_^)9
+ 문단 오류가 나서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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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흘러갈 시간의 바다에 빠진다는 건, 망각을 하는 인간이었던 것이 영원의 틈새에 갇힌다는 건…….
자신의 영원을 주는 날. 영원을 살아갈 그들에게 있어서 자신의 소중하거나,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표현이었다.
*
시리앙마르에 속한 마을의 아주 으슥한 숲에 위치한 어느 교회, 세루스는 양산을 빙글 돌리며 교회를 바라본다. 동족의 친우에게서 온 편지. 그 편지를 읽고 고민한 끝에 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로 했고, 결국 이렇게 시리앙마르까지 와버렸다. 원래는 그저 축의금만 보내려고 했지만……. 향후 자신의 행적을 생각하면 이번 기회에 얼굴이라도 한번 비추어 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물론, 사실은 잊어버릴 것 같아서였지만.
양산을 접어내리고 교회의 문 앞에 섰다. 그의 친우는 특이하기도 하지. 뱀파이어주제에 교회에서 결혼이라니… 그것도 이런 외진 곳에서. 세루스는 문고리를 잡고 교회에 들어섰다. 식장은 아직 준비가 덜되었는지 몇몇의 뱀파이어들이 분주히 그곳을 나돌아 다녔다. 세루스는 잠시 그들의 상기어린 얼굴을 구경했다. 축복받는 날이기 때문인 걸까, 그들은 본인들이 결혼하는 것도 아니면서 무척 기뻐 보이는 얼굴이다. 잠시간 그들을 구경하며 그의 친우를 찾으러 걸음을 옮기던 찰나였다.
“이봐! 세루스!”
젊은 남성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세루스는 고개를 돌렸다.
짙은 흑갈색을 뒤로 질끈 묶은 머리의 검붉은 눈동자. 뾰족하게 솟은 귀와 송곳니. 입가의 쭉 그어진 흉터는 그의 분위기를 매섭게 만들지만 턱시도를 잘 차려입은 채 장난스럽게 웃는 얼굴은 오늘,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자의 모습이다. 세루스는 예전의 그의 얼굴을 떠올려봤다. 전에도 그는 이런 얼굴이었나? 드문드문 끊어져가는 기억을 헤집었다.
“또 생각에 빠져들었구만. 왜 그래, 내가 누군지 이번에도 까먹었나?”
“…아니. 생각보다 전이랑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거 같아서 그랬단다.”
고상히 대꾸하는 세루스에 친우, 카를 인베니오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 뚱한 표정에, 그놈의 말투는 여전하군. 친우에게도 어린애 다루는 할머니같은 말투라니.”
카를이 쯧쯧 거리며 혀를 찬다. 세루스는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좀 살았잖니. 네가 이해하렴. 네 말투가 여전히 아이 같은 것에 나도 모르게 그만……. 정말로 고상한 말투였다. 카를은 할 말 잃은 이처럼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아니, 나도 오래 살았는데…은근슬쩍 먹이는 것도 여전하다니깐…….
한숨을 푹 내쉬며 카를은 고개를 내저었다. 제 친우의 농담 아닌 진담에도 딱히 기분나빠하지 않은 채 히죽거리며 웃어보였다.
“그래도 말인데, 이야… 네가 내 결혼식에 올 줄은 몰랐단 말이지. 네 꼬맹이랑 오순도순 거리느라 바빠서 못 올 줄 알았는데!”
“…….”
“그래서 그 꼬맹이는 어디 있냐?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게 딱 5년 전이지 않나? 완전 엊그제네! 물론, 인간들은 금방금방 크지만! 걔도 오늘 내 결혼식 보러왔나?”
“…….”
“으음…그 녀석 이름이…그래! 아이테르!”
그 녀석은 어디 있어? 카를이 연신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본다. 허나 어디에도 저가 알던 꼬맹이의 모습을 한자가 보이지 않는다. 카를은 이내 제 앞에 말없이 땅바닥만 쳐다보는 친우를 보며 분위기가 이상해진걸 느꼈다. 그리곤 잠시,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찬물 벼락을 맞은 것처럼 눈이 커다래졌다.
“너….”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카를은 벙긋거리던 입을 결국 다물고 말았다. 세루스와는 달리 기억력이 좋은 카를이 마지막으로 본 그들을 떠올렸다. 그때의 제 친우는 아이의 손을 잡고 환한 웃음과 함께 저를 배웅해줬었다. 긴 시간을 방황하며, 한때는 인간이었던 친우는 다른 놈들과는 달리, 심히 기억과 감정이 불안정했지만 아이를 만나고 나아졌었다. 그랬는데, 그런데 지금 모습은…….
카를은 제 목구멍에서 간질거리는 물음을 차마 내뱉지 못했다. 아니, 이미 예상은 됐었다.
세루스는 굳어있는 카를의 모습에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카를이 화들짝 놀란다.
“너도 나를 잊었니? 앞에 있는데도 가만히 있구나.”
“아, 그게…….”
“걱정마렴. 오늘은 너의 날이야, 카를.”
세루스가 희미하게 웃었다. 카를이 복잡한 눈빛으로 그 미소를 바라보다 곧, 마주 웃어주었다.
“맞아, 오늘은 나의 날이지. 내 영원을 줄 날이야.”
*
자신의 영원을 주는 날. 영원을 살아갈 그들에게 있어서 자신의 소중하거나,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표현이었다. 그래, 오늘은 카를의 축복받는 결혼식이었다.
“신부는 누구니? 내가 아는 뱀파이어 중엔 너 말고도 결혼한다는 자를 못 들었는데…”
세루스가 말을 흐리며 그에게 물었지만 카를은 그저 웃고 있었다. 세루스가 아무리 궁금한 빛을 띄워도 그는 단지 나중에, 신부가 입장하면 알 것이라고 그리 말했다. 시간은 꽤 흘러 마침내 결혼식이 시작됐다.
세루스는 신랑 측 하객석에 앉았다. 주례를 서는 자는 같은 뱀파이어였고, 신랑 측 하객석에는 한때 카를과 다니면서 알게 된 몇몇의 동족들과 다른 이종족의 사람들이 다였다. 그리고 신부쪽은…
“…아무도 없구나.”
텅 비어있는 신부 측 하객석이 무언가 낯설었다. 왜 아무도 없지? 의문도 잠시, 신랑인 카를이 입장했다. 당당한 걸음걸이가 그답게 느껴진다. 카를이 끝에 도달하고 이후 신부가 입장한다.
신부가 들어오고 그 모습을 본 세루스는 언젠가 제 아이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세루, 무서워하지 마요.
“신부가……,”
“허허, 꽁꽁 감추던 게 이거였네. 카를 저 자식.”
네가 큰다면, 그때 결정하자꾸나.
“신랑은 신부에게 자신의 영원을 줄 것을 맹세합니까?”
나는 네가 나처럼 영원히 살아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려주고 싶지 않단다.
영원히 흘러갈 시간의 바다에 빠진다는 건, 망각을 하는 인간이었던 것이 영원의 틈새에 갇힌다는 건…….
아…, 그런 기분마저 뭐라고 하는 건지… 그것마저도 잊어버리는 거야…….
아이테르, 난, 나는…
“내 영원을 당신에게.”
찬란히 웃으며 자신의 영원을 바치는 그 모습에 결국 일어서서 식장을 도망치듯 뛰쳐나갔다.
더는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
식이 끝나고, 신랑과 신부는 한명을 제외한 모든 이에게 축복을 받았다.
“하하! 카를 네녀석 신부가 누구인지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설마 인간 아가씨였을 줄이야!”
호탕하게 웃는 동족이 카를의 등짝을 퍽퍽 때린다. 아이고, 아이고! 그만 좀 때려 이 영감아! 목소리는 앓아 죽지만 얼굴은 실실 웃고 있다. 그의 옆에 서있는 인간의 신부가 수줍게 같이 웃는다. 카를은 여러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떠들던 중간 중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에 카를의 영원이 그에게 물었다. 카를, 누구를 찾고있나요?
“아아, 그, 내 친우가 보이질 않아서.”
카를은 한참을 두리번거린 끝에 문을 바라보았다. 밖은 어느새 어둑해졌는지 황혼이 진 색깔이 약간 열려있는 문틈 사이로 그 빛을 보인다. 카를은 그것을 눈에 담았다가 자신의 영원할 사랑을 바라보았다. 기대를 머금으며 떨리는 눈썹사이로 흔치 않는 진지한 검붉은 눈동자가 또렷히 그녀를 바라본다.
“이제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나와 살아갈 거야?”
형편없이 목소리또한 떨렸다. 그러나 그의 영원이 살포시 웃으며 그의 손을 잡고 답한다.
“내 영원을 당신에게 줄게요.”
종일 개구지게 웃었던 카를의 얼굴이 일그러진 표정을 짓다가, 환하게 웃다가, 다시 일그러지는 것을 반복했다. 슬픈 듯, 기분이 몹시 좋은 듯. 도저히 종잡을 수 없었지만 하지만, 분명한건 카를은 행복했다.
*
영원한 존재가 그렇지 못한 것을 사랑했을 때 재앙이 찾아온다.
카를은 영원한 사랑을 찾았다.
그의 친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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