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공모전] Valeta

  • 2019.10.01 05:39
  • 조회수147

  위브릴에는 ‘겨울 꽃이 피다’라는 표현이 있다. 실제 꽃을 말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 평소와 다르게 기분이 좋지 않거나 화를 낸다면 마음에 겨울 꽃이 피어 그렇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겨울 꽃이 피어서 그렇지 사람이 나쁜 건 아니라는 자상한 마음이고, 동시에 긴 추위가 얼마나 위험한지 간접적으로 경고하는 격언이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혹독한 겨울이 위브릴에서는 일상이었다.


 “뭐가 문제야?”

 “그런 거 없어요.”

 “없기는. 멀쩡한 학교 때려치우고 전쟁터로 가겠다는데 이유가 없어? 네가 겨울 꽃이 단단히 박혔구나.”


 위브릴의 3대 명물 중 하나라는 마탑은 연구 시설과 학교의 기능을 겸했다. 마탑의 교육을 받은 학생은 좋은 일자리를 얻기 쉽고 연구자로 남아 국가 지원을 받을 수도 있어서 곧잘 엘리트 취급을 받았다. 그런 마탑 중 하나인 ‘바빌루’를 박차고 나가는 학생이란, 퇴학 외에는 1년에 다섯 명도 되지 않았다.


 “교수님, 제 성적 아시잖아요. 여기 있어 봐야 제대로 졸업은 할지 장담도 못하는데 이러다 학사 경고 나오면 저희 아버지 쓰러지십니다.”

 “알지. 알아. 발레타라는 이름 대면 다들 교내 축제에서 대상 받은 가수로만 기억하지, 마법 유체역학 수업에서 3년째 D학점밖에 못 받았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르더라고. 그래서 난 자네가 차라리 학교 그만두고 본격적인 가수의 길로 나선다면 응원해줄 생각도 있었어. 헌데 자원입대라니? 남자들만 전쟁에서 활약하니 샘이 나기라도 했나?”


 마법 유체역학을 담당하는 길반 교수 입장에서 발레타는 간신히 낙제만 면하는 불량 학생이었다. 3년 동안 계속 도전한 끈기는 칭찬할만하나 노력이 실패의 면죄부일 수는 없었다. 발레타는 어깨 아래로 내려온 머리카락 끝을 손가락으로 비볐다. 신중히 말을 고를 때 나오는 특유의 버릇이었다.


 “국왕님은 쓸데없는 부분에서 국민을 사랑하시고, 저는 딸기농사를 짓고 싶어요.”

 “……지금 입으로 똥 싼 거냐? 휴지 줄까?”


 교수가 발레타의 정신건강을 완곡한 표현으로 의심했지만 발레타는 웃지도 않고 책상 모서리만 노려보았다.


 “위대한 흑마도사 디아산스 위브릴께서 말씀하시길, 대륙 정복을 위해 마계의 문을 열었으니 괴물들이 전쟁을 대신하고 국민들은 그대로 생업에 종사하라! 참 나, 그냥 국민들이 전쟁터에서 죽는 게 싫어서 그렇다고 말하면 되잖아요? 뭘 잘난 척 하고 징집 명령도 안 내리느냐고요. 우리나라가 농사 잘 안 되고, 날씨는 더럽게 춥기만 해서 살기 힘드니 좀 더 살기 편한 데로 가자, 그런 생각인 거 모르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발레타는 울상이 되었지만 울지는 않았다. 여자라고 얕보이면 안 된다 가르친 부모님의 말씀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말투에 짜증과 자긍심, 약간의 영웅심리가 섞였다.


 “딸기 농장을 갖는 게 제 꿈이에요. 품종도 개량하고, 겨울에도 잘 자라도록 환경도 조성하고…… 더 따뜻한 대륙으로 진출하면 훨씬 쉬워지겠죠. 기왕이면 마계의 괴물들이 엉망으로 만들지 않은, 깨끗하고 적당한 땅이 있으면 좋겠어요. 제가 직접 찾아야 한다고요.”


 길반 교수는 눈을 맞으며 자란 딸기의 향긋함을 떠올렸다. 그리고 따뜻한 햇볕을 머금고 자란 딸기의 달콤한 과즙을 상상했다. 어느 것이 더 나은지 우열을 가릴 문제가 아니라 가능성의 문제였다. 교수는 마지못해 서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휴학으로 처리 해줄 테니 서류 작성해와.”

 “교수님!”

 “세 가지 조건이 있네. 살아서 돌아올 것, 돌아오면 마법 유체역학 수업을 다시 듣고 제대로 통과할 것, 그리고 나중에 딸기 농장 차리거든 첫 해에 수확한 딸기 한 상자를 내 연구실로 보낼 것.”


 1년에 석 달 뿐인 위브릴의 봄처럼 발레타의 얼굴이 눈 녹듯 밝아졌다. 당장이라도 끌어안으려는 기세를 길반 교수가 손짓으로 말렸다.


 “그 감사 인사는 무사히 갔다 오거든 하라고.”


 발레타는 손에 든 휴학 신청서와 교수의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깡충대는 걸음으로 교수실 문을 나섰다. 그는 문을 닫기 직전에 축제에서 대상을 받았던 바로 그 목소리로 소리쳤다.


 “다녀오겠습니다!”




 - fin




#공모전  #디아르노셀  #아르노셀글

댓글 2

댓글을 입력하려면 로그인 해주세요.

알림
  • 작성자 2019.10.01 11:36
    @금포크 
    발레타 :  딸기 품종 중에 valeta 라고 있는 거 알아? 5월에서 7월쯤 나오니까... 교수님께 첫 번째 상자 드리고 두 번째 상자를 보내줄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9.10.01 06:43
    (정말 술술 읽히는 글이네요!!) 딸기 한 상자를 로테에게도 보내주면 좋겠다!

자유 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