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 에 대한 검색 결과
제목+내용
- 바닥에 길게 늘러 붙은 그림자에서 툭 불거져 나온 미물은 이제 제게 또 다른 저주가 되어 저를 어둠으로 끌어내려 했다. 사랑했던, 사실은 아직도 고이 간직해 사랑하고 있는 이의 핏방울이 침대 아래로 고이는 것을 느끼고 눈을 감으면 발 밑으로 핏빛의 두려움이 뚝뚝 떨어지다가 조그마한 벌레들이 되어 꿈틀거리며 내 몸 위를 기어올랐다. 눈꺼풀 위로 그녀의 얼굴이 덧 그려졌다. 엠마, 갓 구워진 빵처럼 따스하고 부드러웠던 피부나 포근한 옅은 갈색의 땋은 머리카락과 사파이어와 닮은 푸르른 눈, 저는 그 파란 눈을 참 좋아했다. 군인이기에 항상 예민해있어 한기가 서려버린 자신의 서늘한 벽안이 아닌, 화사하게 빛나는 그녀를 닮은 바다, 어쩌면 하늘을 닮은 색이었다. 여신의 화신이 있다면 분명 나의 사랑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랑해 왔고, 차마 소리내어 이름을 부르기라도 한다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 내내 가슴을 태우는 불덩이를 소중히 지니게 만든 여전히 그리운 사람. 품 안에 안길때면 항상 느껴지던 짙은 장미의 향기는 순간 일그러져 하얗던 얼굴이 이제는 창백하게 질린채 지난 시간의 나를 힐난했다. 또 다시 흐드러지는 장미의 향, 현실은 꿈보다 아득했고 꿈은 현실보다 더욱 생생했다. " 위브릴이 문..을, 문을 열었어, 우린 다 죽을거야. 어떡해? .. 응? 어떡하지 아서, 나 무서워.. " 항상 장미가 핀 듯 발갛게 물들어 있던 두 뺨 위로 두려움은 보석이 되어 뺨을 타고 주륵 턱선 밑까지 흘러 내려왔다. 내 팔을 붙잡은 그녀의 손은 죽은 나뭇가지처럼 하얗게 질려 안타깝도록 파들파들 떨어대고 있었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해줄 수 없었다. 그저 미친듯이 떨리는 그녀의 손을 잡은 채로 눈을 지그시 감았다. 신은 간절히 바라온 신자들을 도와줄 것이다. 삼십여 년간 독실한 신자로 살아온 심장은 간헐적으로 피를 터트리며 그 것을 의심하지 말라고 소리쳤으나 머리는 계속하여 혼돈, 혼돈의 군단 총력을 계산할 뿐이었다. 승산? 섣불리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의 여력을 알지 못했고, 알고 나서 자신은 밀려오는 다수에 맞설 수 있을까. 그녀는 내가 대답이 없던 것이 무서웠었나 보다. 히끅이던 울음은 침묵을 기점으로 봇물을 터트렸다. 그렇게 서럽도록 아이 마냥 엉엉 소리 내어 우는 엠마의 모습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 .., 미안해. 알잖아, 거짓말 못하는 거. " 이제 엠마는 대답해 줄 수126285526작가페이지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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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루에티가 죽었다. 그 사실은 나를 이유 없는 죄책감에 빠뜨렸다. 그저 그 너무나도 이타적이었기에 동료를 지키는 대신 스스로가 죽어야 했던 동료를 지키지 못해서, 사실 미루에티를 그리 잘 아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런데 어째서 미루에티를 되살리려 소문 하나만 믿고 물의 정령 여왕까지 만나러 갔던 것일까, 먼 발치에서 바라본 미루에티는 분홍 머리카락이 참 잘 어울리는 부드럽고 다정한 여인이었다. 상냥하고 따스한 그 살랑거림은 봄바람 같아 대화를 나누지 않았음에도 그 온기의 끝자락은 자신의 살갖을 간지럽혀 왔었다. 어찌 저리 따뜻할 수 있을까, 허나 미루는 제가 생각한 상냥하기만 한 여자는 아니었나보다. 희생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과 맞바꾸어. 처음으로 미루에티를 가까이서 보았다. 죽은 뒤에야 미루에티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고운 얼굴은 내가 마주했을 때는 이미 서늘하게 식어 있었다. 아무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에릭은, 죽은 미루에티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기에는 미루에티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에는 정말로 미안해 더 이상 무슨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저 조용히, 마차의 덜컹거리는 소리에도 묻힐 정도로 작게숨 죽여 울었다. 그렇기에 그 아무도 에릭의 울음을 알지 못했다. "지켜주지 못했으니, 너를 살리기 위해선 무슨 수라도 쓸 수 있어." 물가에 발을 딛었다.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너는 잠을 잤다고 말했고 나는 그것이 그저 꿈이었을거라 답했다. 네가 없었던 일은, -없는거다. 너는 쭉 우리 곁을 함께 해주었고, 그 동안은 그저 질 나쁜 악몽을 꾼 것 뿐이라고 그리 남기며 다시끔 꿈에서 깨어난 것에 우리는 자신을 희생하면서 까지 다른 이를 살리려 했던 숭고한 성녀를 위한 앞으로도의 안위를 바랐다. #아르노셀글 #히든스토리126285526작가페이지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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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모전 #디아르노셀 페란의 말에 따르면 목표로 하고 있는 ‘미상의 괴물’은 나우르의 가장 큰 숲 중 하나인, ‘회한의 숲’에 있다는 것 같다. 이름조차 뜨뜻미지근한 숲에 숨어서 호시탐탐 나무꾼을 노리는 괴수의 모습이 살짝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그런데, 기록관 양반은 무슨 이유로 이런 일에 자원했지?” 게보그는 잠시의 침묵도 견딜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지금 우리의 진영은 이렇다. 앞에서 페란이 일행을 이끌고, 바로 뒤에 엘과 에레나가 붙어 호위와 주변의 감시를 한다. 원호를 맡은 에디는 1선과 최후방 사이에 배치되어있다. 원래라면 에디가 나와 동행해야하지만, 페란의 지시로 호위는 게보그가 맡게 되었다. “자원이라기보다는, 스승님의 명령으로 왔다고 봐야죠.” “명령? 이 일이 그렇게나 중요했다니, 나도 몰랐어.” 게보그는 가볍게 웃었다. 그는 생각보다 가벼운 사람이었다. 한량 같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끊임없이 실없는 소리를 하며, 실없이 웃는 걸 좋아하는 사람 같다. 아니면 어딘가를 외면하기 위한 최선이라 생각해서 일지도 모른다. 실없이 사는 것이. “게보그 씨도 아까 전에 엄청 진지하게 듣지 않았나요?” “페란녀석이 충분히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길래 말이야. 그런 척 했던 것뿐이지.” “하긴, 나우르의 ‘에이기스’ 용병단이면….” “쉿.” 에디가 검지로 입술을 누르며 말했다. 게보그는 전과 다르게 심각한 표정으로 내 앞을 가로막았다. “기록관 양반. 내 뒤에서 떨어지지 말라고.” 나는 고개를 조용히 끄덕이면서도, 품에서 기록용 종이를 꺼냈다. 웬만한 일로 찢어지지 않고, 마법으로 파괴하지 않는 이상 사라지지 않는, 시상의 탑에서만 사용하는 고급스러운 종이었다. 물론 그를 아는 것은 시상의 탑에서 나오지 않는 기록관뿐이다. 잉크대신 검지에 마법을 부여해 펜처럼 휘갈기기 시작했다. 현재의 날씨, 습도, 그리고 바람 소리 하나 나지 않는 정적을 하나하나 기록한다. 이제 시작인 건가. 가슴을 움츠리지 않는다면 내 심장소리가 바깥에 들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흥분되기 시작했다. 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았다면, 펌프질 되어 올라오는 혈액의 밀집대형에 머리의 냉정이 순식간에 무너져 버렸을 거다. 나는 냉정이란 단어를 소리 없이 중얼거리며 전열의 상황을 지켜봤다. 페란은 쭈그리고 앉은 채로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고, 엘은 무릎을 꿇고 앉아 뭔가를 중얼거Ehdang0작가페이지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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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모전 #디아르노셀 2. “이번 의뢰를 먼저 확인하고 온 ‘엘’의 말에 따르면, 지금까지 봐온 녀석들과는 달라. 최소 용종(種)중에서 소형 축에는 낄 정도의 크기, 형체는 뭔가 알 수 없었다는 것. 이게 가장 중요해.” “저기, 질문을 좀 해도 될까요?” “그래.” “어느 부분을 ‘강조’한 건지 모르겠는데. 뭐가 중요하다는 건지.” “형체.” 첫 만남부터 침묵을 지키던 두 사람 중 에레나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여전히 두건을 쓰고 있었다. 그녀는 청록색에 가까운 눈동자를 가볍게 굴리며 말을 이어갔다. “모든 짐승이나 용종들은 형체가 있어. 땅을 기어 다니면 다리가 없을 것이고, 하늘을 난다면 날개가 달려있겠지. 그게 아니라면 거대한 발톱을 휘두른다거나, 무식한 곰이라면 그런 색의 털을 가득 두르고 있겠지.” 그녀는 턱으로 내 로브를 가리켰다. 곰. 한 해의 절반 이상이 겨울인 위브릴에는 하얀 털을 한 곰들이 있었다. 대부분 온순한 외모를 지녔지만, 핏방울 하나가 설원에 떨어지기도 전에 먹잇감을 낚아챌 정도로 무서운 포식자이다. 시상의 탑에 기록실에 있는 ‘위브릴의 생태’란 서적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포식자에게 찢겨나간 생물의 삽화가 생생한 그림체로 새겨져 있었다. 간담이 서늘했다. 그 이후로는 공부를 핑계로 곰을 보기 위해 망원경을 빌리는 일은 없었다. 에레나의 짧은 말 한마디에 그때의 충격이 기억나는 것 같았다. 살짝 소름이 돌아 몸을 떨었다. 에디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 그분이 당부한 것처럼 너는 최후방에서 우리의 사냥에 대한 내용을 기록할 거니까. 정 뭐하면 내 옆에만 붙어있으면 되고.” 페란은 짧은 헛기침으로 분위기를 환기했다. 지금 중요한 건 에디처럼 위로하는 것도, 에레나처럼 겁을 주는 것도 아니란 듯. 다시 시선이 페란에게 쏠리는 사이 게보그는 굵은 팔뚝으로 굳게 팔짱을 꼈다. “형체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상대의 약점을 파악할 수 없다는 거야. 최악의 경우에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순수하게 힘 대 힘으로 맞붙는 것뿐이지.” 바보가 아닌 이상 페란의 말의 의미를 모를 수 없었다. 특히나 기록관이자 위브릴의 출생자인 나는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혼자서 마법을 다룰 때도 그 마법이 어떠한 것이고, 어떤 형태로, 어떤 목적을 가졌는지 모르면 구현해낼 수 없다. 그게 불이나 피우는 작은 마법이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예를 들어Ehdang0작가페이지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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